"부처님께서 계시지 않으면 앞으로 저희는 무엇에 의지하고 정진해야 하겠습니까?"
아난의 물음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자신을 등불로 삼고 스스로에게 의지하여라.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서는 안된다.
불법을 등불로 삼고 불법에 의지하여라.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自燈明 自歸依 法燈明 法歸依 라 하는데 실제 원문에서는 이 구절이 없다고 합니다. 이 구절의 출처는 장아함경 권 제 2 유행경이며 이것에 대해 정리해 놓은 내용이 있어 여기에 옮겨 봅니다.
출처 : http://ask.nate.com/qna/view.html?n=5070167
원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佛告阿難 衆僧於我有所須耶 若有自言 我持衆僧 我攝衆僧 斯人於衆應有敎命 如來不言 我持於衆 我攝於衆 豈當於衆有敎令乎 阿難 我所說法 內外已訖 終不自稱所見通達 吾已老矣 年粗八十 譬如故車 方便修治得有所至 吾身亦然 以方便力得少留壽 自力精進 忍此苦痛 不念一切想 入無想定 時我身安隱 無有惱患 是故 阿難 當自熾燃 熾燃於法 勿他熾燃 當自歸依 歸依於法 勿他歸依 云何自熾燃 熾燃於法 勿他熾燃 當自歸依 歸依於法 勿他歸依 阿難 比丘觀內身精勤無懈 憶念不忘 除世貪憂 觀外身 觀內外身 精勤不懈 憶念不忘 除世貪憂 受意法觀 亦復如是 是謂 阿難 自熾燃 熾燃於法 勿他熾燃 當自歸依 歸依於法 勿他歸依 佛告阿難 吾滅度後 能有修行此法者 則爲眞我弟子第一學者
해석하자면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대중들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느냐? 만약 내가 스스로 '내가 대중을 지탱하고 있다', '내가 대중을 거느리고 있다'고 말했다면 이 사람은 대중에게 가르치고 명령할 것이 있으리라. 그러나 여래는 '내가 대중을 지탱하고 있다'거나 '내가 대중을 거느리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찌 대중에게 지시할 것이 있겠는가. 아난이여, 나는 안팎을 모두 남김없이 가르쳤으며 끝까지 내가 보아야 할 것을 통달하였다고 스스로 칭찬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늙어 나이가 80에 이르렀다. 마치 낡은 수레를 방편으로 고쳐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것처럼, 내 몸도 그러해서 방편의 힘으로 잠시 목숨이 머물러 있게 하고자 힘써 노력하여 이 고통을 참았으니, 모든 표상을 마음에 두지 않아 표상이 없는 선정에 들었을 때 내 몸은 평온하여 괴로움이 없었다.
그러므로 아난이여, 마땅히 자기를 등불로 하고(熾燃) 법을 등불로 하며 다른 것을 등불로 해서는 안된다. 마땅히 자기에게 돌아가 의지하고 법에 돌아가 의지할것이며,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무엇이 자기를 등불로 하고 법을 등불로 하며, 다른 것을 등불로 하지 않는 것인가? 스스로에게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며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는 것인가?
아난이여, 비구는 몸 안을 통찰(觀)함에 힘써 게으르지 않으며, 잊지않고 마음을 챙겨(憶念) (한 순간도) 놓치지 않아(不忘) 세간에 대한 욕망과 싫어하는 마음을 없앤다. 몸 바깥(外身)과 몸 안팎(內外身)을 통찰함에 힘써(精勤) 게으르지 않으며(不懈), 잊지 않고 마음을 챙겨(憶念) 한 순간도 놓치지 않아(不忘) 세간에 대한 욕망과 싫어하는 마음(世貪憂)을 없앤다. 느낌(受)과 마음(意)과 존재(法)를 통찰함(觀)도 또한 이와 같으니, 아난이여, 이것을 이른바 '자기를 등불로 하고 법을 등불로 하며 다른 것을 등불로 하지 않는 것이요, 스스로에게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며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라 한다(自熾燃 熾燃於法 勿他熾燃 當自歸依 歸依於法 勿他歸依)."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반열반에 든 뒤에 능히 이 법을 수행하는 자는 곧 나의 참된 제자이며, (해탈의 도를) 배우는 자(學者) 가운데 으뜸이 되리라."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암바빨리의 망고동산에서 머무신 뒤 벨루바 마을에서 안거를 나실 때 큰 병에 걸려 죽을 것 같은 고통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겨우 회복되셨을 때 아난은 부처님에게 "저는 부처님께서 설마 제자들에게 아무런 지시도 남기지 않고 열반에 드시겠는가 하는 생각에 아파하시는 것을 봐도 아무런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설하였으며, 나는 대중을 거느린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아난아, 나는 낡은 수레처럼 겨우 생명을 지탱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의식작용이 없는 선정에 들어감을 통해 고통을 이겨내고 평온을 이루었다. (비구들이 이 경지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자기와 법을 등불로 하고, 다른 것을 등불로 해서는 안된다. 자기와 법에 의지하고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무엇이 자기와 법을 등불로 삼고, 의지하는 것인가? 몸에 대해 몸 안과 몸 바깥, 몸의 안팎을 통찰하여 마음챙김을 확립하며, 느낌, 마음, 존재에 대해서도 마음챙김을 확립하는 것이다. 내가 죽은 뒤에라도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사념처)을 수행하는 자는 나의 참된 제자이며 수행자 가운데 제일이다." 이런 가르침입니다.
질문하신 자등명이라고 말하는 것의 경전 원문은 自熾燃입니다. 치연熾燃은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인데, 불교에서는 보통 밝은 불꽃이라는 의미보다 맹렬한 수행의 의미로 쓰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맹렬한 수행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밝게 타오르는 불꽃의 의미로 풀이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남방 디가니까야에 의하면 이 부분은 섬(도피처, 의지처)과 등불로 번역이 가능한데, 남방에서는 섬으로 번역합니다. 경전의 범어 원문이 섬 혹은 등불이므로 치연熾燃이라는 표현은 등불, 불꽃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치연을 맹렬한 수행으로 해석하여, 자신을 대상으로 맹렬히 수행하고, 법을 대상으로 맹렬히 수행한다는 해석도 의미가 상통합니다.
사념처 가운데 신념처, 수념처, 심념처(의념처)의 세 가지는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통찰이고, 법념처는 존재를 대상으로 하는 통찰입니다.
自熾燃(熾燃於自) 自歸依(歸依於自) - 身念處, 受念處, 心念處(意念處)
法熾燃(熾燃於法) 法歸依(歸依於法) - 法念處
그러니까 존재의 실상을 여실히 보기 위한 통찰 수행을 함에 있어서 밖의 어떤 것을 대상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몸과 감각, 마음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구체적 수행 지침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에게 있는 신령스러운 자성' '참 자아' 이런 것에 의지한다고 보면 불교와 전혀 다른 외도의 가르침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그 해석 오류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이중표 교수가 수 차례 논문을 통해 지적한 바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자등명 법등명은 사념처 수행을 말하는 것입니다.
위의 한문 원문은 중국전자불전협회에서 입력한 대정신수대장경本을 참조하여 교정한 것입니다. 한문 해석은 직접 했습니다만, 동국대학교 역경원 번역과 남전 대반열반경을 참조하였습니다. 허접한 해석이어서 부끄럽습니다만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Enowy

